예금통장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언제나 똑같은 통장인 것 같지만 시대상을 반영하며 많은 변화를 꽤해왔다.
과거에는 종합가계예금통장이나 보통예금통장이 주를 이뤘다. 종합가계예금통장의 경우 보통예금과 저축예금, 정기예금을 모두 기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거의 통장이 지금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통장에 대한민국 정부 수입인지를 부착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온라인예금이 선을 보였다. 컴퓨터가 도입된 것이다. 이때부터 온라인 취급점이면 전국 어디서나 입출금이 자유롭고 업무처리도 빨라지게 된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는 '나라살리기'나 '원금보장' 등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룬다.
◆TV수신료 예금도 있었다
1970년대 통장 중에는 TV 전용으로 발행한 통장이 있었다. 'TV정기예금'이다. TV정기예금증서는 TV시청료 자동납부를 신청하면 나오는 증서였다. 이 예금은 TV등록번호 앞으로 발행했기 때문에 양도하더라도 TV소유권 이전의 경우만 가능했다. 월불이자를 TV시청료 자동납부에 한해 사용했다.
1974년에 발행한 한 TV정기예금을 보면 24개월 만기로 연이율 126%라고 기재돼 있었다. 월이자액은 300원이었다.
◆외환위기, '나라살리기'가 대세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고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예금통장들은 저마다 '나라살리기'를 내세웠다. '기업살리기'를 내세운 통장도 있었다.
IMF 외환위기 직전 기아그룹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기아살리기통장'을 판매했다. 제일은행은 은행 부담으로 이 통장 예금이자의 2%를 기금으로 적립, 기아살리기 범국민운동연합에서 추진하는 각종 사업을 지원했다.
제일은행은 경제난관 극복에 전국민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외채갚기통장'을 판매했다. 이 통장은 전국민이 1인당 50만원을 예금해 외채를 갚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조흥은행의 일자리 100만개 만들기 지원통장을 선보였다. 은행이 고객이 받는 이자의 일정액을 일자리 100만개 만들기 기금에 출연한다. 이 기금은 일자리창출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물론 고객은 이자중 일부를 기금에 따로 출연하지 않는다.
당시 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원리금 보장'도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1998년 8월부터 2000만원 이하 예금에 대해 원리금을 전액 보호해 주는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이 적용되면서 안전성을 중요시하는 투자패턴이 나타났다. 한미은행이나 조흥은행 등은 아예 '원리금안심예금'이란 이름으로 상품을 출시했다.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하자 달러화 예금도 인기를 끌었다.
한미은행은 1997년 외화예금(달러화)을 할 경우 무료로 보험에 가입해 주고 특별 우대금리를 주는 '나라튼튼 외화예금'을 판매했다.
외환은행은 외화정기예금금리를 1%포인트 인상해줬다. 달러화를 1개월짜리 정기예금에 맡길 경우 종전 연 5.26%의 금리보다 높은 6.26%를 적용했다.
한일은행은 '나라사랑 외화통장'을 판매하면서 외화보통예금의 금리를 종전 1%에서 4%로 3%포인트나 올려주기도 했다.
국민은행도 외화예금을 장기로 예치하도록 만기가 경과했을 때 약정금리의 30%만 받던 이자를 당초 약정금리로 지급받을수 있게 했다.
동남은행은 고객이 미국 달러화를 은행에 팔 경우 3%(1달러당 33원)를 우대해 주고 , 외화예금에 예치할 때에도 수수료(1달러당 16원)를 면제해 줬다.
◆Y2K통장도 나와
새로운 밀레니엄 2000년을 앞두고 기업들의 'Y2K' 버그 문제에 대비한 통장도 나왔다. 기업은행의 '밀레니엄적금'은 우대금리 외에 경품을 제공하고 Y2K문제 해결을 지원해 주는 상품이었다.
자체적으로 Y2K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있는 중소기업에겐 3단계에 걸쳐 도움을 제공했다. 우선 Y2K문제를 점검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2단계로 문제해결을 상담하며 3단계로는 최고 3000만원까지 소요 자금을 빌려준다.
개인으로 500만원 이상을 불입하는 사람에게는 문화상품권 등 1만~10만원까지의 밀레니엄경품을 줬다.
◆우루과이라운드 통장ㆍ레저 통장 등 시대변화 반영
2001년 이후에도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통장이 여럿 등장했다.
국민은행이 2001년 11월 판매한 '농민사랑 정기예금'은 쌀값하락과 뉴라운드 출범 여파로 시름에 잠긴 농민들을 돕는 상품이었다.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출시된 지 9일만에 3000억원이 모인 것. 가입고객은 예치금액별로 햅쌀 단감 사과 등을 받기도 했다.
2002년에는 레저 통장이 인기를 끌었다. 당시 국민은행이 판매한 '캥거루 가족레저 통장'이 판매 4달만에 1조원을 돌파했다. 국민은행은 고객들의 레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가족단위 레저와 여행의 계획에서 출발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 상품은 3개월 이상 가입 자에 300만원까지 무보증으로 여행자금을 빌려주며 국민카드사에서 여행컨설팅, 국내외 호텔.콘도.레포츠 예약, 여권 및 각국 비자수속 대행 등을 제공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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