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스포츠이자 탈출이고, 정열이며, 일종의 종교와도 같다.”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네팔의 고산, 마칼루(8,481m)를 초등한 프랑스 원정대장 장 프랑코의 말이다. 한자의 의미대로라면 등산(登山)은 ‘산을 오르다’라는 소박한 뜻. 그러나 산 좀 타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등산은 단순한 육체적 활동만은 아니다. 등산은 어떠한 것보다 내면적인 것이어서 삶의 방법을 체득하는 깨우침이라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 이 말이 과장이라 생각한다면 산을 한번 타보라. 그리고 그 정상에 서서 생각해 보라. 육체의 고됨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 그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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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등산은 그 긴 세월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초기의 등산은 아무런 복장도, 기구도, 기술도 없는 원시적인 산 오르기, 즉 오로지 정상 탈환만을 목적으로 한 ‘피크 헌팅(Peak Hunting)’이었다. 하지만 고도 4,000m 이상의 알프스 봉우리들이 차차 등정되기 시작하면서 등산은 목표뿐 아니라 과정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레저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등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좋은 스포츠 중 하나다. 세계 어떤 산도 우리의 산처럼 반나절 만에 정상을 정복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국토의 2/3가 산으로 이루어져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발걸음 할 수 있고 사계절 변화도 뚜렷하니 등산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여기에 주 5일 근무의 확산까지 가세해 매주 산을 찾는 인구는 점차 늘어 현재 200만 명을 웃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등산을 즐기는 연령대는 50~60대가 압도적. 젊은이들이 친구들하고 스키 타러 간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또래끼리 산 타러 간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산을 기피하는 데는 학창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 단골 코스로 선생님들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산에 올랐던 지겨운 추억도 단단히 한몫했으리라고 본다. 산은 일단 오르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품고 시작에 나서야 한다. 알고 가면 행복한 낙원이요, 모르고 가면 재미도 없거니와 목숨을 위협할 만큼 무서운 대형사고가 기다리는 곳이 바로 이 산이다.??
 | 등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등산은 흔히 50분을 걸으면 10분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 방법도 규칙적으로 산행을 하는 숙련자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초보자일 경우에는 30분 걸은 후 5~10분 쉬는 것이 적당하다. 다만 휴식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오히려 더 피로해지기 쉽고, 걷는 리듬 또한 깨지므로 10분 이상 쉬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걷기와 쉬기의 균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속도다. 똑같은 코스를 등산한다고 가정할 때 초보자에게는 숙련 산행자의 1.5배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처음부터 너무 조급하게 오르려 하지 말고, 숙련자들 페이스와 똑같이 맞추려고도 하지 말자. 산이 처음이라면 그저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등산을 시작하면 될 뿐이다. |
 | 등산은 걷기, 달리기와 더불어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으로 꼽힌다. 하지만 산에서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반복적으로 지나야 하고, 돌이나 바위 등의 지형 조건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평지에서 걷거나 달리는 것보다 더 많은 근육을 사용하게 된다. 근력을 길러주고 척추를 튼튼하게 해주어 요통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효과적인 등산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운동으로 추천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호흡, 순환계를 활성화해 산소 섭취량을 늘려주며,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어 삼림욕 효과까지 더불어 얻는다. 등산이 다른 야외 스포츠와 다른 점은 바로 인위적인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등산에는 어떠한 규정도, 심판도 없으며 오로지 자연만을 상대로 어울리거나 싸운다. 자신의 용기와 기지, 체력, 위험 대처 능력 등을 모두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이를 이겨내고 정상을 정복했을 때 느끼는 짜릿한 전율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한번 경험하고 나면 반드시 다시 산을 찾게 되는 것이 등산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느끼며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은 육체적인 건강을 약속 받는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이렇게 좋은 등산이건만, 산을 타는 것도 나름 법칙이 있어서 다음의 주의사항들을 유념하지 않으면 건강의 독이 된다. ‘산은 심장으로 오르고 무릎으로 내려온다’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올라갈 땐 심장에, 내려갈 땐 무릎 관절에 많은 부담이 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절염이 심하거나 체중이 지나치게 많이 나가는 사람은 관절에 지나친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하산 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내려올 땐 발뒤꿈치보다 발바닥 앞쪽이 바닥에 먼저 닿도록 해야 체중이 발목관절에서 한번 걸러지므로 무릎을 보호할 수 있다. 등산용 스틱을 이용해 몸의 균형을 잡아 낙상을 방지하고 체중을 분산시키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다. 또한 심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도 지나치게 가파른 산행 코스를 피해야 하며 골다공증 또는 고혈압 환자도 무리한 등산은 피하는 것이 좋다. 배낭은 가벼운 짐과 무거운 짐을 골고루 분산해서 넣어야 체감 하중이 크지 않으며, 당일 등산의 경우 운동화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높은 산을 오를 때나 1박 이상 산에 오를 경우에는 발에 잘 맞는 등산화를 꼭 신어야 한다. 변덕스러운 산의 날씨를 고려해 얇은 옷과 두꺼운 옷을 여러 겹 껴입어, 수시로 입고 벗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유명세를 타지 않은 호젓한 산, 운달산
문경의 운달산(1,097.2m)은 주변의 이름난 산들 때문에 우리에게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의 대미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산줄기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산은 부근의 희양산, 백화산, 조령산, 주흘산, 월악산 국립공원 등의 큼직한 산들에 가려 있어 유명하지는 않지만 대신 호젓함을 간직하고 있어 운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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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룡사를 비롯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10여 개의 암자들로 볼거리가 풍부하고 1,000m 넘는 높이의 고산인 만큼 산세가 당당한 것이 매력이다. 계곡을 따라 등산로를 오르다보면 하늘과 닿은 능선을 만나게 되는데 장군목 주변에 갈참나무와 야생화, 나물이 많아 봄기운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다. 남쪽으로 난 능선길로 올라서면 만날 수 있는 큰 바위에 서면 서쪽에 백화산과 주흘산 능선이 백두대간과 함께 보이고, 북으로는 대미산에서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그리고 동으로는 공덕산과 황장산, 천주봉이 보인다.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 삼신봉
산 오르기를 취미삼아 전국 곳곳을 누비며 산 좀 타 본 사람들이라면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인 삼신봉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리산 100리길 주릉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삼신봉. 이곳을 오르지 않고서 지리산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삼신봉은 완벽한 조망을 자랑한다. 산행은 흔히 쌍계사를 거쳐 삼신봉, 그리고 청학동으로 이르는 코스를 기본으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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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가는 길은 도로 양쪽으로 만개한 벚꽃을 질리도록 감상할 수 있는 십리 벚꽃길이 펼쳐져 봄 산행을 재촉하기도 한다. 쌍계사에서 삼신봉을 오르는 길은 두 가지. 불일 휴게소 뒤 능선으로 해서 1121봉을 거쳐 삼신봉에 이르는 코스가 있고, 불일폭포를 거쳐 오르는 코스가 있다. 그러나 불일 휴게소 뒤 능선 코스는 가는 길목에 표지가 없고 능선에 닿기 전에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 단점이 있는 반면 원시적인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불일폭포 코스는 등산로가 잘 닦여 있어 삼신봉에서 청학동까지도 별 어려움 없다.
진달래가 피어나는 그 곳, 청계산
서울 근교에 위치해 수도권 등산객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청계산은 봄이 오는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서울시 서초구, 성남시 상적동, 의왕시 청계동, 과천시 막계동에 걸쳐 등산로가 이어져 있으며, 이 등산로를 따라 끊임없이 펼쳐진 진달래가 장관을 이뤄 봄 맞이 산행에 그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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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상적동 옛골에서 시작해 청계사를 거쳐 과천 문원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10여 킬로미터에 이르지만 산행시간은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4시간이면 충분해 하루코스로 가볍게 등산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청계사에 다다르면 절 마당의 감로지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실 수 있는데, 가슴이 시릴 정도로 시원한 그 물맛이 일품이다. 청계사의 샘물 한 바가지면 매봉까지 가는 길도 한달음이다. 능선길에는 진달래나무 대신 소나무가 울창하며, 헬기장을 지나 소나무숲을 20분 정도 더 걸으면 매봉, 서쪽 바위 끝에 앉아 감상하는 관악산과 과천 시가지 전경이 가슴을 탁 틔운다.
다도해의 봄 내음이 한가득, 부용산
전라남도 장흥군에 위치한 부용산은 동학운동 최후 격전지 중 하나였던 산이다. 하지만 그 투쟁의 역사와는 사뭇 다르게 해마다 봄이 되면 산 전체를 뒤덮는 철쭉과 진달래로 진풍경을 이룬다. 곳곳에 튀어나와 있는 바위에서는 도암만과 다도해의 눈부신 전경이 펼쳐지며 마치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 보이는 천관산도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산이다. |
| 부용산은 장흥 군청이 천관산, 제암산, 사자산 등과 함께 장흥의 명산으로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 얼굴 한 번 내비춰 본 적이 없는 유일한 산이기도 하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을 따라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부용사 가는 길목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동백숲 터널과 만나게 되고, 동백 꽃잎 맞으며 부용사를 지나 능선길을 오르면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곳 용샘과도 만난다. 남포 해안 주변에서 세발 낙지와 조개구이 등 제철 지역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도 부용산 산행의 매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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